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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소도시 여행 ■■■/독일

[독일 바이에른] 포도밭이 품은 성곽도시, 뷔르츠부르크 WÜRZBURG /하늘연못

 

독일 로맨틱가도가 시작되는 도시는 포도밭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마리엔베르크에서 바라보는 뷔르츠부르크는 유난히 맑은 하늘을 갖고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 역사는 대조적이었다. 7세기 마리엔베르크 대성당이 세워지자, 카톨릭 신도들이 모여든 것이 도시의 발원이다. 카톨릭은 도시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이 되었으니 옆 도시 밤베르크와 비슷한 역사가 전개된다. 카톨릭이 타락할수록 시민들은 높은 혈세에 궁핍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반면 대성당은 점점 화려한 요새로 변질되었다. 이웃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일어난 마틴의 종교개혁운동도 전파되었지만, 이미 카톨릭 요새가 되어버린 이곳을 공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재 신교가 상대적으로 많은 바이에른에서 주민 90%가 구교를 믿는 카톨릭도시가 되었다.

 

 

 

 

 

밤베르크에서 뷔르츠부르크로 가는 길도 목가적인 풍경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뷔르츠부르크 중앙역 Würzburg Hbf       뷔르츠부르크 기차역(사진 上)은 바이에른 철도의 중심지지만 역이 단촐하다. 독일의 많은 역들이 마치 궁전을 연출했기에 상대적으로 에러란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에서 나서던 순간 대학도시답게 많은 젊은이들이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축제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기차역 바로 앞에 단촐한 노선을 지닌 트램이 3분 간격으로 운행중이라 많은 시민들이 트램으로 향한다.

 

 

 

 

 

뷔르츠부르크 교통의 중심은 기차역이 아닌 대성당이다. 모든 대중교통이 대성당을 지난다. 카톨릭을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답다란 생각이 든다. 현재 90%이상의 시민들이 카톨릭신도다. 신교도 교회는 딱 2개 밖에 없다고 한다. 바이에른주의 많은 도시들이 종교개혁의 성공으로 신교도시가 된 것과 대조적이다.

 

덧붙여 2개의 교회중 하나가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노이뮌스터교회다. 구시가지 중심에 대성당과 교회가 함께 있는 모습은 성당과 교회가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고 있음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주활동무대였단 이유로 바이에른주의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다. 뷔르츠부르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도시들이 옛 모습대로 복원을 택했다면, 이 도시는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노벨상을 6명이나 배출한 뷔르츠부르크 대학교가 있다 보니 여느 도시보다 상업시설이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로 북적였다.

 

 

 

 

 

레지덴츠 Residenz ★       인근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봉기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은 뷔르츠부르크에도 영향을 끼쳤다. 시민들은 부패한 카톨릭에 대항했지만 이미 요새가 되어버린 대성당과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큰 희생은 카톨릭에 있어 회초리가 되었다. 뷔르츠부르크 주교는 시민과 단절된 마리엔베르크요새에서 나와 시민들이 거주하는 구시가지에 레지덴츠를 건축함으로써 시민들과 함께 하길 바랬다. 

 

새로운 레지덴츠는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교의 거주지'라고 평했고,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가 파괴될 때 연합군이 보존했을 만큼 화려하다.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재료로 그려진 넓이 600㎡의 세계 최대 천장 프레스코화, 300여개의 화려한 로코코 양식 방들, 과연 무엇이 변했을까?

 

  ●  info      시민들의 혈세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프레스코화를 보려면 늦어도 오후 3시 반까지는 입장해야 한다. (오후 4시 마감) 

 

 

 

 

 

 

 

 

알테마인교 Alte Mainbrücke ★       오래된(Alte) 마인강의 다리라는 의미. 뷔르츠부르크를 형성한 종교 지배자의 구역이었던 마리엔베르크요새와 서민들이 거주하던 구시가지를 이어주는 석교다. 다리에는 오랜 카톨릭 도시답게 12인의 성자가 마리엔베르크요새를 배경으로 위용있게 조각되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프라하와 비슷해 <작은 프라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프라하는 가보지 못했지만 사진에서 봐오던 프라하와 흡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마인강의 물결을 따라 유유히 시선을 이동하며 과거를 내 멋대로 회상해본다. 마인강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경계선. 역사적으로 그 경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난 다리를 건너 과거 주교구지역이었던 메리엔베르크로 향했다.

 

 

 

 

 

알테마인교를 건너면 마리엔베르크 요새로 향하는 총 3가지 길을 안내해준다. 위 사진 속 전경을 시야에 담으려면 포도밭으로 우회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 유스호스텔 방향으로 걷다보면 포도밭 입구가 나온다. 요새까지는 가까워 보이지만 돌고 돌면서 오르기에 약 1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인적이 드문 밭길이라 정리되지 않았다. 고혹적인 마을을 드넓은 포도밭이 감싸고 있는 풍경앞에 내 마음은 감동으로 번져갔다. 

 

 

 

 

마리엔베르크요새 Festung Marienberg ★       이 요새는 도시 생성의 원점이자 역사다. 7세기 주교 킬리안(Killian)은 마리엔베르크 대성당을 건축했다.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며 도시를 형성했다. 오래도록 절대권력이었던 카톨릭이 부패하자, 시민들의 높은 혈세로 힘겨웠고, 성당은 거대한 요새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카톨릭의 부패에 맞서 봉기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은 뷔르츠부르크 시민들의 무장봉기로 이어졌다. 주변도시의 종교개혁운동이 성공했던 반면, 뷔르츠부르크는 이미 요새로 변모한 대성당 앞에 개혁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바이에른주의 많은 도시가 신교도가 많은 반면 뷔르츠부르크는 여전히 대부분 카톨릭을 믿는다. 

 

 


 

● 마리엔베르크요새로 향하는 길
① 요새 앞 포도밭을 거쳐 가는 길 - 알테마인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걸어가면 유스호스텔이 나오고 그 뒤편에 포도밭 입구가 자그마하게 나온다. (최소 40분 이상) - 뷔르츠부르크의 전경을 보려면 이 길을 택해야 한다.
② 마리엔베르크로 속성으로 가는 길 - 알테마인 다리를 건넌 후 오른편으로 가야한다. 길이 좀 복잡하니
동화독일님의 마리엔베르크로 올라가는 길 (클릭!!)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10분) 
③ 마리엔베르크 뒤편 차도로 가는 길 - 완전 돌아가는 길이라 1시간 30분 이상 걸린다. (절대 비추!!) 

★★ 버스를 이용한 최고의 방법 
빨리 문을 닫는 레지덴츠를 오전에 구경 후, 레지덴츠 앞에서 Festung행 9번 버스탑승 후 종점에서 하차.
버스정거장에서 올라가면 주차장을 거쳐 마리엔베르크 요새로 들어간다. 오르막을 기준으로 주차장 오른편 끝자락에 포도밭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니, 내려갈 때는 뷔르츠부르크의 전경을 구경하며 포도밭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다. 만약 바이에른주티켓소지자는 무료로 버스를 탑승할 수 있다.



 

 

 

 

바이에른의 밤은 고요하지만 뷔르츠부르크에선 예외다. 대학도시, 와인도시답게 밤이 되어야 도시의 진가가 발휘된다. 하루의 일과, 하루의 공부를 마친 많은 이들이 맥주와 와인을 곁들인 담소로 하루를 정리한다. 마인강의 느린 율동에 맞춰 도시는 고요한 속도로 밤을 맞이한다.

 

 

 

 

 

본 포스팅은 코레일기자단 4기로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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