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에 홀릭된 내가 혼자만의 첫 유럽여행을 꿈꾸던 곳은 스위스였다. 험한 자연환경으로 가득한 나라지만, 면적당 기차역이 유럽에서 가장 많아 구석구석 기차가 들어간다. 기차의 종류도 다양해서 골라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골든패스라인, 베르니나특급, 빙하특급 등 이색적인 관광열차들이 낭만을 싣고 천혜의 대지를 달린다. 영화 속에서나 펼쳐질 법한 기차여행이 스위스에서 현실로 펼쳐지니 이거야 말로 세계 최고의 기차여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는 다른 유럽과 달리 민영회사가 운영하는 철도가 많아서 유레일패스 이용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스위스패스를 이용하면 민영회사철도, 메트로, 트램까지 스위스 대부분 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440개의 박물관과 관광지를 입장할 수 있어 합리적이다. 아래 소개할 레만호 기차여정은 스위스패스가 없더라도 유레일패스로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특별히 관광열차가 운행하진 않지만 제네바에서 몽트뢰까지 바다처럼 펼쳐지는 호반과 포도밭 사이를 기차가 달려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레만호는 서유럽에서 가장 큰 호반이다. 레만호의 물줄기는 론강을 거쳐 지중해에 들어간다. 레만호 주변은 「라보지구의 포도밭 Lavaux, Vineyard Terraces 」이라 불리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포도밭이다. 일조량이 풍부해 스위스 와인의 명산지로도 유명하다. 포도밭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호반마을들은 하나같이 예술인들이 사랑한 휴양마을이다. 소설의 배경무대로 쓰이기도 했고, 예술인들이 남은 여생을 보내기도 했다. 레만호반 여정의 마지막인 몽트뢰에 도착하면 스위스 중부지방의 비경을 달리는 골든패스라인으로 기차여행을 릴레이로 연계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제네바는 프랑스와 스위스가 만나는 국경도시이자 인구의 절반이 외국인인 국제도시다. 레만호수와 론강이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예전부터 무역과 상업 도시였다. 중세시대 제네바를 유명케 한 것은 칼뱅의 종교개혁이다. 해외(특히 프랑스)에서 억압받던 개신교 신도들이 모여 들면서 개신교 도시가 되면서 자유와 관용의 도시가 되었다. (이때 프랑스인들이 많이 넘어와서 프랑스 정서가 강하다.)
세계냉전시대에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하면서 제 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이 설치되면서 UN본부,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무역기구(WTO), 국제적십자,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20개가 넘는 국제기구들을 유치되었다. 그리고 200여개가 넘는 전 세계 대기업들의 본사가 있어 스위스 해외투자자본의 과반수가 투자되었다. 그렇게 제네바는 스위스만의 도시가 아닌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info
▣ 순수하게 도시만 산책한다면 도보로 3시간이면 충분 (UN본부 등 국제기구들은 시외곽에 있고 미리 투어 예약할 것!!)
▣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도시인 바젤처럼 기차역과 공항을 프랑스와 공유중이다. 즉, 프랑스레일패스로도 스위스 제네바와 바젤을 여행할 수 있다. 필자는 프랑스레일패스와 스위스패스를 하루하루 연계해서 썼다.
제네바 코르나뱅 역 Gare de Cornavin 레만호반 기차여정의 시작이다. 국경도시답게 스위스와 프랑스가 기차역을 공유한다. 국제기구와 유럽 대기업들의 본사가 밀집되어 있어 유럽 전역으로 향하는 열차와 항공노선 등 사통팔달의 교통을 갖추었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가장 바쁜 기차역이다. 프랑스 문화권이라서 그런지 프랑스에서 넘어온 나에겐 국경을 넘었다는 느낌조차 없었을 정도로 낯설지 않았다. 프랑스 여행의 연장이었다.
스위스의 여느 대도시들처럼 친환경 트램이 도시를 누비지만 명소들이 도보권이라 이용할 일은 없다.
몽블랑거리 Rue du Mont-Blanc 기차역에서 레만호수까지 뻗어있는 상업지구다. 세계 최고의 시계산업의 도시답게 시계상점이 유달리 많다. 제아무리 목가풍 스위스라고 해도 국제도시의 시계는 초침처럼 빠르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만 호수 Lac Leman 레만호수가 없었다면 제네바는 시계초침에 갇힌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혹은 제네바가 국제도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도시의 슬로우모션은 레만호수의 느린 물결과 부드러운 바람뿐. 도시를 감싼 호수는 외로운 여행자의 벗이 된다. 레만호 다리에 잠시 서서 끝없이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며 가슴을 핀다. 그리고 오늘 하루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 달라며 호수바람을 들이켰다...
영국공원 Jardin Anglais 레만 호반에 위치한 시민들의 휴식처다. 영국과의 친분으로 조성되었나 싶었거늘 그냥 영국풍이라서 영국공원이라고 한단다. 공원중심에 세워진 「두 연인의 동상」은 1915년 제네바가 스위스연방의 일원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꽃시계」는 세계적인 시계산업의 메카를 상징한다. 본래 계절마다 다양한 꽃장식을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누드였다.
론 거리 Rue do Rhone 론 강 남쪽에 형성된 제네바 최대 명품쇼핑지구로 마치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를 연상시킨다. 스위스 대표 명품브랜드 Bally를 비롯 Lanvin, LV, Christian Dior, Chanel 등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들이 입점되었고, 고급백화점 글로부스 Globus가 있다. 롤렉스 Rolex, 쇼팔 Chopard, 바쉐론 콘스탄틴 Vacheron Constantin 등 스위스 대표 고급시계전문점과 보석상점도 가득하다. 스위스 된장질의 천국이다. (물론 스위스 물가가 워낙 비싸서 누가 사려나 싶지만....)
구시가지 스위스 명품상업지구 론 거리 아래 위치한 언덕에는 중세시대 스위스가 펼쳐진다. 제네바 대학생들의 고색창연한 단골서점들과 브런치 레스토랑들을 지나 좁은 언덕길을 올라가다보면 프랑스 종교개혁자 칼뱅과 철학자 루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 네이버캐스트 링크)는 이곳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에스파스 루소 Espace Rousseau는 그가 살던 생가로 현재는 소박한 루소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생 피에르 대성당 Cathedrale Saint-Pierre 칼뱅의 종교개혁의 거점이 된 개신교 교회로 구시가지의 상징이다. 본래 12세기에 건축된 천주교 성당이었다가 교회로 바뀌면서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되었다. 종교혁명가 장 칼뱅 (Jean Calvin, 1509~1564)은 로마카톨릭을 거부하고 독일 개신교(루터교)를 받아들였다. 프랑스에서 복음주의를 전파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박해를 당하자 스위스로 피신했다. 그는 로마교황청에서 벗어나 생 피에르 대성당을 본거지로 독자적인 개신교를 창시했다.
다른 유럽의 대성당에 비교하면 화려하거나 웅장한 멋은 없지만 또 다른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어 의미가 깊다. 최근 교회 지하에서 고대로마시절의 유물까지 발굴되었다. 현재 종교개혁을 선도하던 칼뱅의 흔적들과 고대로마시대의 유적들을 2개의 박물관에 보존전시중이다.
만약 칼뱅의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스위스 서부지역은 오히려 프랑스에 편입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든다.
제네바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바로 옆 소도시 니옹으로 향한다.
제네바에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한 동화같은 호반마을이다. 기원전 고대 로마제국의 씨저가 건설한 도시지만 성벽을 제외하고 로마제국의 유적들은 없다. 다만 마을 고택들에 고대 로마의 색채가 미약하게 남아있다. 로마시대에 출토된 유물들은 니옹성 인근 로마박물관 Musee Roman에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태리의 감성이 이 작은 마을에 모두 함축되어 있어 매력이다.
info
▣ 마을이 매우 작아 박물관을 보지 않고 마을 산책만 즐긴다면 도보로 1시간 정도
▣ 니옹 바로 옆 마을 프랑쟝 Prangins에 국립박물관으로 활용중인 프랑쟝성이 있는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니옹역 Gare de Nyon 니옹역은 제네바에서 기차로 13분 소요된다. 니옹이라는 도시적인 이미지와 부합된다.
갸흐거리 Rue de Gare 니옹의 중심상업지구. 프랑스의 화려함이 넘치는 제네바와 달리 소박하고 절제된 독일 감성이 가미되어 있어 프랑스와 독일 국경도시인 알자스 지방을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풋풋한 시골소녀의 느낌이랄까? 노천시장과 소박한 상점들이 제네바에 비해 저렴한 물가로 유혹해서 한 끼 식사를 마친 후 여행을 시작했다.
니옹성 Chateau de Nyon 레만호반에 위치한 소박한 성은 마치 호수가를 거니는 어린 백조같다. 아담한 규모에 소박한 건축양식이 나에겐 화려한 성들보다 매력적이었다. 성은 현재 니옹도자기들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그러고보니 어디서 본 듯한 이 느낌은...... 아! 수퍼마리오란 게임을 통해서 본 것 같다. 점프해서 성의 깃발을 내려야 할 것 같구나....
이유는 없었다. 인적도 흔적도 없는 성곽에 서서 넓은 호수만 멍~하게 바라보았다.
플랫폼에서 남의 기차촬영질에 몰입하다가 다시 기차를 타고 레몬호반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학문의 도시 로잔으로 향한다.
[스위스 서부] 레만호 기차여행 ① 국제 평화의 도시 제네바 Geneve, 호반의 성 니옹 Nyon (클릭!!)
[스위스 서부] 레만호 기차여행 ② 레만호의 테라스 로잔 Lausanne, 호반마을 브베 Vovey 몽트뢰 Montreux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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