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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특집] 매혹적인 기차여행

[한국 간이역] 전라도 간이역 ① 춘포역, 임피역의 100년 이야기 / 하늘연못의 간이역 여행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


일본 본토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은 지리적 특성과 비가 자주 내리는 기후적 특성 탓에 쌀농사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쌀은 무사나 부유한 상인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조일합방 후 일본상인들이 앞다투어 호남평야에 몰려 들었다. 1900년대 초 일본본토 쌀값이 폭등하자 조선쌀은 그들에게 대박이었다. 호남지역은 일제시절 다른 일본식민지에 비해 본토와 지리적으로 가까웠고, 인근에 군산항이 있어 배로 운송하기 수월했다.


일본인들은 쌀의 대량생산을 위해 미곡창고와 정미소를 만드는 등 농지기반을 근대화했다. 더불어 본토까지 효율적인 운송을 위해 군산항을 개발했고, 군산항까지 연결되는 철로를 개설했다. 호남평야의 쌀은 일본의 기술력과 조선의 노동력과 결부되어 수출되었다. 


예전에 이 지역 소작농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는데, 호소카와 가문처럼 조선인 소작농들과 상생한 일본인 지주도 있었던 반면, 이엽사 농장처럼 수탈하던 농장주도 있었다. 전북을 여행하다보면 일제시절 흔적이 비교적 남아있는 곳들은 당시 일본인 지주가 조선인 소작농과 상생한 지역이라고 봐도 될 것 같고, 현재 흔적조차 찾기 힘든 지역은 수탈 당하던 곳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이엽사농장이 관리하던 임피, 전주 삼례, 익산 황등쪽은 일제의 흔적이 거의 없다.) 이건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암튼 전라도 철로의 역사는 '쌀'과 함께 시작된다.

그래서 전북의 오래된 기차역 인근에는 어김없이 정미소와 오래된 창고들이 공존하며, 당시 일본인 밀집지역이었기에 일제시절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춘포역은 1914년에 건축되어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으로 등록문화재 210호로 등재되어 있다. 춘포역은 2000년대 초반까지 무인역으로 활용되었으나, 전라선 복선화 사업으로 폐역되었다.


본래 명칭은 대장역으로 과거 이 지역이름이 대장촌(大場村, 일본명칭 오오바무라, 즉, 겁나넓은마을)으로 불렸다고 한다. 독립이후 일제잔재청산으로 현재의 이름인 춘포역으로 개명되었다. 

사실 춘포라는 이름은 참 이쁘다고 생각했다. 봄의 나루터라니...디게 문학스럽지 않은가? 








춘포역은 익산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중간 즘 있다. 대중교통(111번 버스)이 비교적 자주 다니는 지역이라 접근성이 나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춘포역 주변이 평범한 시골이라 여행지로 매력적이진 않다. 역 주변으로 오래된 일식 가옥과 옛 정미소와 창고 등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도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 주민들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는 것이 여행자에 대한 도리인 것 같다.







춘포역의 시간적인 가치를 인정받자, 익산시도 춘포역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여기도 임피역처럼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기차역의 생명줄인 철로마저 사라진 할아버지역. 이내 찾아온 노을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춘포역은 바로 앞 복선화 철로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KTX를 바라 보고 있었다. 







이내 일몰은 곡창지대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100년 전 이 지역의 중심이었던 번창했던 순간들도, 시간 앞에서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일 뿐일 것이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간이역을 손 꼽으면 항상 등장하는 역으로 여행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1924년 일제는 군산항을 통해 본토까지 원활한 물자운송을 위해 임피역을 설치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기차역중 춘포역 다음으로 2번째로 오래된 간이역이다. 광복이후 유인역으로 활용되다가 무인역이 되어버렸고, 국내 최초 새마을호 무인역 정차의 기록도 꿰차기도 했다. 2000년 초 폐역되었고, 등록문화재 208호로 등재되었다. 현재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군산에서 관광지로 활용중이다. 







임피역은 유독 수목과 참 잘어울린다. 평소때보다 단풍 등 꽃놀이 시즌에 임피역을 찾는다면, 완전 뿅 반할 것이다. 

마치 첫사랑의 무대같은 역이랄까?







지금은 비록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철로도 건강하게 보존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춘포 일대의 호소카와농장, 구마모토 농장 등 대부분 일본인 농장주는 소작료가 반띵이었는데, 이 지역을 관리하던 일본인 이엽사농장은 75%의 소작료를 요구했다. 농민들은 다른 농장처럼 반띵을 요구했으나, 이엽사농장은 거절했다. 이에 빡친 농민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 봉기를 하는데, 이 사건을 옥구농민항일항쟁이라고 한다. (광복 후 얼마나 조선인들이 화가 났으면 이엽사농장이 관리했던 임피, 삼례, 황등 쪽에는 일제시절의 흔적조차 찾기 힘드랴~)







임피 출신 작가인 채만식의 소설을 모티브로한 조형물들이 이곳저곳에 많이 세워져 있어, 당시 임피역과 함께 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나마 연상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임피지역 역사박물관으로 활용중인 2량의 새마을호는 임피역의 정서와는 굉장히 안어울린다. 한국 최초로 무인역에 새마을호가 정차했었다하여 기념비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가을바람이 불면 다시 임피역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