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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특집] 마을산책의 로망

[충남 아산여행] 아산 산책여행 ① 배방역, 현충사, 아산 지중해마을 / 하늘연못


즉흥적으로 찾은 아산은 음식점에 비유하자면 뷔페라는 생각이 든다. 민속마을, 지중해마을, 현충사, 온양온천 등 다양한 맛을 지닌 명소들이 풍성하다. 그때의 기분에 맞게 즉흥적으로 떠나기 좋은 곳이 아산이다. 그래서 아산은 뷔페같은 여행지다.  


본래 아산여정의 목적은 오로지 지중해마을이었다. SNS에 다들 인생샷 하나 남긴다고 하니, 나 역시 안갈 수 있으랴.... 지중해마을은 높은 기대 탓에 약간 싱거운 느낌이었다. 인근 디저트 여행지를 찾은 곳이 현충사와 외암리민속마을이었는데, 다녀와보니 이곳들이 아산여행의 메인이고, 지중해마을이 디저트가 아니였을까? 








배방역 주변으로 대기업과 대학교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신도시가 형성되었다. 장항선의 간이폐역 모산역은 2007년 수도권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 배방역으로 화려하게 컴백한다. 장항선에서 용났다. 택지지구의 끝자락을 잡고 있다보니, 정문으로 나가면 신도시요, 후문으로 나가면 영락없는 시골이다. 역을 두고 앞뒤 풍경이 극과 극이다. 


배방역에서 아산지중해마을로 향하는 버스만 있을 뿐, 그 외 아산지역 관광지로 이동하려면 온양온천역이 합리적이다. 현충사도 배방역이 더 가깝지만, 대중교통은 온양온천역이 더 편하다.








아산 지중해마을은 블로그, SNS 등 개인미디어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은 곳이다.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곳에서 인생샷을 SNS에 올린다. 그 곳이 지중해가 아닌 한국임을 알면 다음 여행지의 버킷리스트로 올라 가게된다. 이젠 아산여행의 No.1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탕정동 삼성트라팰리스 아파트 앞 먹자촌의 일부를 그리스 산토리니, 프랑스 프로방스의 옷을 입혀 지중해마을로 단장했다. 그간 자기 멋대로 건물을 올리던 우리나라에서는 신선한 발상이다. 유기적인 통일감이 마을 전체의 정체성이 되었다. 물론 온전한 지중해마을을 연출했다기에는 우리나라 먹자골목의 감성도 강하지만, 이색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왠지 유럽풍 카페만 있을 법 하지만, 일식당, 중국집, 국밥집을 비롯한 다양한 식당들이 영업중이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것도 왠지 독특하다면 독특할까나....  






특정 주말에는 자유시장도 개최하고 있다. 이런걸 보면 마을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잘 운영되는 느낌이다.






골목골목에 숨은 소소함을 탐닉하는 묘미도 있다. 






공원 바로 옆 프랑스 프로방스 라인 건축물들은 색감들이 참 따스하다. 자동차들만 없었다면 유럽 느낌이 더 강했을텐데..... 평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많은 자동차들이 거리를 점령한 걸 보아하니, 유명하긴 유명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은 다음이란 이름으로 기약하며, 이곳과 작별했다. 지중해를 생각하며 일부러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지중해마을은 핫이슈여야 한다. 다음에 좀 더 규모가 커지고, 자동차들이 빠지면 꽤 근사할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가을날, 충무공 이순신장군님께 인사드리러 왔다. 그래 좀 솔직해지자. 학창시절 단골 수학여행지는 왠지 꺼려진다. 그때 이미 봤는데 뭣하러 또 가? 라는 심정과 왠지 다시 생생한 교육현장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충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충사에 간 까닭은 가을이 왔기 때문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에 현충사의 가을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을 모신 사당이다. 단언컨데 우리나라에서 왕이 아닌 개인을 모신 사당 중에 범국가적 규모의 사당은 현충사가 유일할 것이다. 그만큼 충무공 이순신은 역사적 상징성이 웬만한 왕들을 뛰어 넘는다. 한국인들이 뽑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는다면 충무공과 세종대왕이 1,2위를 다툰다고 한다. (요새는 영화덕분에 광해군이 순위권에 진입했다던데... -_-;;; 영화도 좀 고증해서 촬영해줬으면 한다.)






현충사 입구에는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이순신 장군님의 일생 및 관련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한편에는 생활 속에 등장한 이순신 장군이 전시되어 있는데, 과거 500원 지폐속에서도 장군님을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에 저 지폐가 주머니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충무공이 더 이상 지폐에 들어가진 못한 이유를 알았다. 왜냐하면 성균관대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관련 글 : https://blog.naver.com/ui4242ui/220943305231






박물관에서 나와 충무문으로 들어가면 현충사다. 






현충사를 가을에 찾은 이유가 위 사진들 때문이다. 정원은 바라만 봐도 마음을 햄 볶게 한다. 행복하게 한다로 정정.






정원의 구석에 원 현충사가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소나무들이 현충사 앞에 모여든 느낌이다. 






현재의 현충사는 큰 규모로 조성되었다. 앞서 말했듯 왕이 아닌 개인이 이 정도의 사당을 갖고 있는 것은 이순신 장군이 유일할 것 이다. 그만큼 장군님의 애국충정을 국가적 차원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애국충정 앞에 묵념~!!!






현충사 관내이순신 장군의 종가집보존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은 본래 인현동에서 태어났지만, (여기가 충무로란다.) 결혼 후 이곳에서 처가살이하며, 무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내부 구조를 보니 전형적인 조선시대 스타일 타워팰리스 양식이다.






본가 바로 옆에는 이순신 가문의 가묘가 모여있다. 






가묘를 주욱 따라 계단으로 올라가면 충무공의 셋째아들 이면의 무덤이 특별관리중이다. 이면은 정유재란 중 전사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슬퍼했다고 난중일기에 적어두었다. 그 마음은 아버지가 된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이순신 장군이 무술을 연마했던 이 장소에는 활궁장이 조성되었다.






연못을 지긋이 바라보다, 현충사를 나왔다. 

현충사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