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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특집] 마을산책의 로망

[경남 진주여행] 진주역, 진주성 - 촉석루, 의기사, 의암, 창렬사, 국립진주박물관 / 하늘연못


겨울난민이 되어 추위를 피해 남도로 향하던 찰나, 진주에 와서야 봄이 시작함을 느꼈다. 경전선이 느릿느릿한 철도가 봄기차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진주는 생애 첫 방문이었다. 도시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간 몇 차례 여행했던 남원, 공주와 비슷한 느낌 때문이다. 바람결 강줄기 남강을 따라 역사가 흘러간다. 흐르는 역사를 뚝심있게 지키는 진주성은 도시의 정체성이다.  








진주역을 마주한 순간 입에서 자연스러운 탄성이 나왔다. 우우~아아아아아!!!! 그간 우리나라에서 기차역을 마주했을 때, 자연스레 탄성이 나왔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나라 기차역은 재질의 변화만 있었을 뿐, 회색빛 성냥갑 또는 둥근 원통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진주역을 본 순간 앞으로 우리나라 기차역은 이렇게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옥양식의 기차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주역처럼 세련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한옥기차역은 처음이었다. 마치 경복궁에 기차역이 건설된 느낌이랄까? 완전 따봉이다!!! 






금색 궁서체가 돋보이는 역사 현판의 강인함. 붉은 기둥의 굳건함. 오색 단청의 아름다움.... 당신을 제 마음대로 올해의 기차역으로 수상합니다.






웅장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의외로 평범한걸... 






버스정거장도 단청을 잘 살렸지만, 기둥들과 부조화를 이룬다. 목재 느낌이면 좋았으려나... 뭐, 그래도 좋다.






진주역 주변으로 신도시가 탄생중이었다. 진주역이 너무 외진 곳에 있는 게 아니냐란 비판도 있지만, 우리는 익히 기차역이 신도심을 탄생시킨 사례를 광명역, 천안아산역을 통해 경험했다. 위치보다 중요한 점은 연계교통이 아닐까? 완성된다면 진주의 핫스팟이 되리라 생각된다. 적어도 진주역이 품격 하나는 제대로 살리지 않았는가!!









진주를 관통하는 남강. 그 중심에 진주성이 자리했다. 진주성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가는 길목이며 넓은 남강으로 물자가 모여들어 지정학적 입지깡패다. 중세시대는 농경사회였기에 타국을 침략시 식량확보와 물자공급이 우선적이다. 왜적이 한반도를 침략하면, 호남을 점령해서 식량확보 및 배급루트를 뚫어야만 한양 진격이 가능했다. 그래서 진주성이 중요했다. 






진주대첩 당시 순국하신 7만 선열들의 충혼을 기린 임진대첩계사순의단에 들러 묵념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한분 한분 전부 다 영웅이시지만 특히 익숙한 이름은 충무공 김시민 장군과 논개다.






임진왜란 발발하자 진주목사 이경이 톡 까버리면서 김시민 장군은 대타(?) 진주목사가 되어 진주성을 수성했다. 의병장 곽재우를 비롯 3,800여명의 민관이 합심하여 3만 일본군을 격파했다. 김시민 장군은 뛰어난 전술전략가였다. 아군의 숫자가 굉장히 불리하자, 성벽에 허수아비를 배치하고, 부녀자, 노인에게도 군복을 입혀 적에게 군인이 많은 듯 착각을 일으켜 공포감을 조성했다. 야밤에 피리를 불어 고향을 그립게 하여 사기를 저하시켰고, 남강에 유등을 띄워 왜군의 도강을 저지했다. 진주를 넘어 경남 대표 축제로 자리 잡은 남강유등축제는 김시민 장군의 전략적 유물인 셈이다.  


진주대첩의 승전은 진주성 뿐만 아니라 조선반도를 수호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시민 장군이 활약했던 1차 진주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다만 안타깝게도 김시민 장군은 1차 진주대첩때 순국하게 된다.


이듬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대적인 복수전을 시행했다. 전쟁의 휴유증으로 미처 준비가 덜 되었던 진주성은 결국 함락한다. 당시 진주농민과 승려들도 끝까지 저항했는데, 그중 일본왜장을 앉고 남강에 순절한 논개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촉석루에 올라서면 진주의 역사가 보이는 것 같다. 임진왜란의 이미지가 강렬하다보니 진주성하면 호국이 떠오르지만 오래도록 이 도시는 평양과 함께 조선 대표 풍류도시였다. (조선 기생문화의 양대축었데나..뭐래나..~) 


남강의 물줄기 덕분에 각 지역의 물자가 모여들어 재물이 풍성했고, 부자와 관료들이 많아 풍류가 샘솟았다고 한다. 문화예술의 향유 수준 역시 높았을 거라 추측한다. 그 중심에 촉석루가 있었다.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고, 때로는 과거시험장, 때로는 전쟁의 중심에 서서 오랜 기간 진주의 희노애락을 담당했다.   






▶ 촉석루의 경치는 영남 제일 아이가~!!!!  






▶ 사방팔방 드넓은 진주가 펼쳐지는데, 워따 경치가 직인다직이~~!!! 






촉석루 바로 옆에는 논개의 넋을 기린 사당 의기사가 있다. 논개의 고귀한 이미지 탓일까? 여심의 부드러움과 강직함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성금후 묵념하고 논개가 왜장을 앉고 뛰어내린 의암으로 내려갔다. 







본래 위험한 바위라고 해서 위암으로 불렸다고 한다. '위험'표지판이 유달리 강조중이었다. 성인들도 정신줄 놓으면 남강 풍덩은 순식간일 듯 싶다. 이 위험한 바위는 논개 순국후, 의로운 바위라 하여 의암으로 불린다. 






촉석루와 의암 그리고 남강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조화를 바라보니, 왠지 봄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적당히 기분좋게 차가운 겨울 강바람을 마주하며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서쪽의 지휘소라 불리는 서장대가 나온다.






서장대에서 어떤 스님과 함께 바로 위 풍광을 바라보았다.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몇 해전 불자의 길을 택하신 사촌형님이 문득 생각났다. 스님들 중에 사연 없는 스님들이 없듯, 출가 후 이런 풍경을 바라보면 왠지 인생이란 단어가 떠오를 것 같다.






서장대 아래 호국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고려시대 창건된 내성사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주둔지이며, 2차 진주성 전투때 순국한 승병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로 개명되었다. 







호국사 바로 옆 창렬사는 제 2차 진주성전투때 순국하신 선인들의 넋을 모신 사당이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당의 원색감이 참 아름답다 생각했다. 






인간의 가치가 존중받는 평화의 시대에 나는 태어났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어려운 시절 나라와 가족을 위해 목숨 받쳐 어렵게 살아야 했던 선인들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감사합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촉석루와 함께 진주성 양대 볼거리다. 내 마음대로 가칭 임진왜란 박물관이라는 가칭을 붙여주고 싶을 만큼 대부분 왜란 관련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은 동선에 따라 임진왜란 발발 및 전개과정을 멀티미디어와 다양한 사료들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서술중이다. 너무 많은 자료가 아닌 적시에 필요한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어, 동선에 맞게 일목요연하고 짜임새가 있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편 진주박물관이 왜란에만 집중된 느낌은 아쉬웠다. 박물관 명칭이 임진왜란 박물관이었다면 당연했겠지만, 진주박물관이기에 임진왜란 뿐만 아니라 진주가 가진 다른 이야기들도 가미하는 것도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논개와 이순신 특별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두암관은 두암 김용두 선생님께서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나라 유물 179점을 수집해서 본인의 고향 사천 인근 진주박물관에 기증하셨다. 덕분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던 유물들이 돌아온 셈이다.






" 손님 따뜻한 차 한 잔 드릴까예? "

따스한 차 한 잔이 그리웠던 찰나 왠 횡제냐!!라는 마음으로 다기 앞에 방석 위에 앉았다. 아주머님은 이름 모를 꽃차 2 종류와 직접 만드셨다는 떡을 정성스레 대접해주셨다. 창틈 사이로 살며시 보이는 정원과 햇살을 음미하며 울컥울컥 마셨다. 기분이 따봉으로 좋았다.

" 손님 밥 아직 안 드셨능교? 진주 맛집 좀 알려드릴까예? "

따스한 말 한마디가 배부르다.

" 사람덜이 잘 모르능데, 진주는예~ 차가 유명해예~~ " 


진주는 풍류의 도시였음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다도에 풍류는 빠질 수 없는 친구. 물자의 도시답게 다양한 차가 유입되었을 텨, 분명 진주는 조선시대에 높은 수준의 다도문화를 향유했을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옆에는 소박한 커피하우스도 있다. 이미 차를 배터지도록 마셨기에..... 패스~!! 근데 화장실이 날 자꾸 부르네. 







3.1 독립운동 기념비에서 경건히 묵념 (진주성은 묵념 포인트가 많구나~)  






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흐름을 마주하니, 나 또한 풍류 한번 진하게 즐기고 싶구나~ 






 

▣ 여행키워드 | 기차여행, 역사산책


▣ 홈페이지 | 진주성 공식 홈페이지 http://castle.jinju.go.kr

                    국립진주박물관 https://jinju.museum.go.kr


▣ 교통 | 진주역에서 122번, 124번 버스 탑승 후 인사광장, 진주성 하차 (약 30분 소요)  


▣ 지도


▣ 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 (국립진주박물관 포함

    주차료 소형기준 기본 30분 500원 + 추가 10분당 200원 

    - 동주도시 (본인이 사는 도시가 X주 일 경우 신분증제시시 무료 ex) 나주, 경주 등등), 자매도시, 혁신도시 거주시 50% 할인



▣ 여행팁

   - 진주의 또 다른 볼거리인 진양호와 함께 여행하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