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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특집] 마을산책의 로망

[전남 나주여행] 나주학생독립운동 - 구 나주역, 학생독립운동기념관 / 하늘연못


삼일절 맞이 포스팅으로 주제를 찾던 중 나주역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주와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항일시위는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지만, 다른 조선청년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져 불과 4개월만에 전국구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었다.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였고, 특히 성인이 아닌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으로 투쟁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때 참여했던 학생들은 성인이 된 후 독립운동단체에 들어가 인생을 받쳤다. 


한민족이 타 민족에 동화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역사 대대로 강대국의 세력에 맞서 투쟁했던 선인들의 희생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구 나주역은 학생 항일운동 기차역이란 프레임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 의미 깊은 기차역이라 독립훈장 하나 받아야 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 바로 옆 건립된 학생독립기년관이 구 나주역에게 독립훈장이라 생각했다. 


또한 일제시절 건립된 기차역중에 지금까지 보존되는 기차역은 굉장히 드물다. 군산 임피역과 함께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일제시절의 기차역이다. 어렴풋이 플랫폼만 남아있는 영산포역이나 방치된 간이역들에 비하면 나주역은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역시 기차역에 내재된 스토리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나주역은 100년 타임머신이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100년 전 시공간이 펼쳐진다.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 검은 제복의 학생들, 기모노 입은 여인네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 나주역은 1913년 일제에 의해 건립되어 무려 1999년까지 초장수 기차역으로 생존했다. 나주역이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끈질긴 생명력이었을 것이다. 폐역 당시 열차시각표와 여객운임표가 보존되어 있다. 





▶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공연이 펼쳐지기도 하나보다. 








나주역의 독립훈장이라 생각하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나주역과 공존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발과정을 신문기사, 사진, 재현 등 다양한 콘텐츠로 리드미컬한 흐름으로 보여준다. 결미에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독립투사로 활동했던 근거를 제시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의 큰 의미를 찾는다. 또한 이 지역 출신 독립투사들을 기리는 공간을 마련한 것도 마음에 든다.





▶ 기념관 입구에 적힌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 





▶ 2층 미디어실에 들어가면 광주학생운동의 전개과정을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다. 






' 후레이 센징~ (=불량 조선인~, 더러운 조선인) '

1929년 10월 30일 광주발 통학열차... 학생들은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찰나였다. 일본인 중삐리가 조선 누님학생들의 댕기를 잡으며 후레이 센징이라 멸시하자, 열 받은 조선 고딩들이 일본인 중삐리들을 따끔하게 응징해줬다. (하여간 개념을 말아드신 어린 노무 쉬키들은 좀 패야해~) 


학생들은 나주경찰서로 연행되었는데, 일본학생들은 무죄!! 조선학생들은 유죄가 되었다. (언어폭력도 폭력이구만....) 이 소식을 접한 조선 청년들의 잠재된 분노는 활화산 터지듯 대폭발!!!!!

 

당시 일제 교육 방침은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고, 일본인으로 만드는 교육이었다. 조선어는 사용금지였고, 조선사가 아닌 일본사를 배워야 했다. 또한 천황을 향한 신사참배도 강요받았다. 조선 청년들은 그야말로 완전히 빡친 상태였는데.....






그리고 몇일이 지나 11월 3일... 일제는 천황탄생일 기념으로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광주고보 (현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은 참배를 거부하며 거리로 나와 항일시위를 한다. 학생들은 항일운동 단체를 조직했고, 활동했다. 이들의 저항정신은 조선반도의 학생들을 감동시켰다. 4개월 후 학생운동은 전국구로 확대되었다. 총 190여개의 학교, 5만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일제는 휴교령을 내리고, 많은 학생들을 구속시킨다. 이때 참여한 많은 학생들이 추후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 이 지역 학생들의 항일운동이 심해 추측컨데 나주경찰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경찰서로 등극했을 듯... 참고로 현재 건물이 남아있다. (추후 나주 포스팅에서 언급하리다~)





▶ 일제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조선인의 잠재된 분노도 강해져갔다. 





▶ 광주나주 지역에 많은 항일운동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했다. 





▶ 1919년 일본 도쿄유학생들이 발표한 <2.8 독립선언서>는 나주학생운동과는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정신적인 연관성은 매우 깊다. 당시 도쿄유학생들은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강조하며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나주 출신 조선인들이 조선독립을 위한 활약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다. 또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더니, 우리는 이 분들의 이름을 한번 즘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 그때로 돌아가 당신도 이름을 올려보지 않을라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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