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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특집] 마을산책의 로망

[충남 논산여행] 강경 근대역사산책 - 강경역, 강경역사관, 근대역사거리, 돌산전망대, 옥녀봉 外 / 하늘연못의 마을여행


강경은 그저 젓갈로만 유명한 동네라 생각했었다. 대한민국 젓갈 유통의 60%를 담당하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저 맛깔스러운 젓갈로만 놔두기에 오래도록 못다한 이야기가 많은 도시였다. 내륙 깊숙한 입지에 금강이 있어 무역과 상업이 발달했다. 조선말기에는 평양, 대구와 함께 3대 큰 장이 섰던 지역이다. 무역과 함께 종교도 유입되었다. 김대건 신부는 이곳에서 첫 미사를 올리며 카톨릭의 발판을, 미국 목사들도 이곳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개신교의 첫 발판을 만들었다. 그래서 강경은 크리스천 신구교의 성지로도 불린다. 군산, 목포, 인천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마을 곳곳에는 강경의 근대사가 고스란이 남아있다. 현재 강경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도시 곳곳을 정비중이다.


3월의 따스함이 내리던 날, 강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호남에서 호서로 넘어가던 그 경계점에 열차는 정차한다. 남자들에게는 강경역에 대한 추억이 있을 법하다. 대장병들이 논산훈련소를 오고 나갈때 강경역에서 환승해서 연무대 논산훈련소로 오고 나간다. 요새는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7080세대의 논산훈련소는 꿈의 훈련소, 즉 논산 에버랜드로 불렸었다. 입영통지서에 논산훈련소로 찍혀 나오면 주변에서 모두 축하해줬다. 일단 논산훈련소로 들어가면 후방으로 자대배치를 받거나, 기술보직을 받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영장통지서에 논산훈련소로 찍혀 있다면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않고 입영연기없이 즉시 입영했을 정도니까~







강경역은 마을 시장 중심에 위치했다. 기차역 주변으로 군인들도 자주 보이며, 바로 옆이 경찰서라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든든한 기차역이라 생각했다. 

철도가 없던 시절에는 한강 이남에 강경 만한 뱃길 무역창구도 없었지만, 철도, 도로 인프라가 좋아지면서 강경의 입지는 흔들린다. 현재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1시간 간격으로 정착하지만, 고속철도 환승 및 연계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역전으로 강경의 역사가 잉태된 재래시장이 펼쳐졌다. 조선 말기 3대 큰시장답게 규모도 큰 편이다. 







기차역 앞 근대역사문화 안내판이 있다. 강경은 오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넓다고 넓은 마을도 아니고 좁다고 좁은 마을도 아니다. 다만 미로같은 마을이 단점이다. 튼튼한 두 다리와 네이게이션 감각만 있다면 여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래도 기차역 내부에 관광안내소와 시티투어버스를 기대했다. 아직까지는 모텔 외에는 마땅한 숙박시설도 없어 관광도시라고 칭하기에는 부족한 점도 많다. 추후 관광도시로 성장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져있길 바랬다. 







여정의 서두는 황산근린공원으로 잡았다. 시계방향으로 여행하기에 좋은 시작점이다. 황산이라는 정식명칭보다는 거대한 암석산이라는 의미의 돌산이라는 표현이 주민들에게는 더 익숙하다. 주변에는 죽림서원, 젓갈박물관, 뚝방길 등 소소한 여행포인트들이 있지만, 이번 포스팅은 근대역사여행이 주제라서 포스팅에서는 일단 제외키로 했다. (소소한 포인트까지 다 포스팅하면 강경은 꺼내야 할 보따리가 너무 많다.) 







돌산 정상에 올라서면 '강경여행책자'의 목차를 읽는 기분이다. 금강과 강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조망된다. 마치 오랜 이야기들이 마치 잼처럼 도시 위로 발라져 있는 느낌이다. 금강은 내륙에 위치한 이곳까지 넓고 깊은 폭으로 흐른다. 호남과 호서의 중심에 있어 철도 등 내륙교통인프라가 없던 시절에는 강경은 최고의 해상교통 중심지였다. 강경하구를 통해 많은 물자들이 교류되었고 동시에 상업도 번성했다. (강경상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류교역은 문화와 종교도 포함한다. 중국에서 갇 신부수업을 받은 김대건 신부도 강경으로 들어와 인근 나바위성당에 자리잡았고, 미국 선교사들도 강경을 발판으로 신교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마을 곳곳에 튀어나온 교회 철탑들은 지금까지 역사적 자존심을 지켜온 듯, 당당한 모습으로 마을의 파수꾼이 되었다. 강경이 유독 교회가 많은 이유도 이런 역사적 배경탓일것이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현 강경역사관)은 무역과 상업으로 번성을 누렸던 강경 근대사의 상징이다. 1905년 한호농공은행으로 시작해서, 일제시절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 해방후 한일은행 강경지점, 이후 은행통폐합에 따라 수차례 간판이 바뀌다가 결국 젓갈창고로 전락... T_T;; 현재 논산시에서 매입해서 강경역사관으로 꾸몄다. 관내 역사자료들은 모두 시민들의 기증에 의한 것이라니 그 의의가 크다. 







반면 아쉽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부 및 주변 정리가 안되어 어수선한 느낌이다. 그나마 단장된 공간이 커다란 공중화장실인데, 바로 옆에 큼지막하게 건축한 센스가 돋보인다. 그래!!! 화장실은 중요하니까!!! 그리고 개성없이 무식하게 큰 거리의 간판들은 어쩔껴?







한옥이라 더 아름다웠던 구 강경성결교회. 초기 한옥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는 남녀신도를 따로 구분했다고 한다. 강경은 대한민국 크리스천의 뿌리가 처음으로 내린 곳인지라 앞으로 교회와 성당이야기가 꾸준히 나올 것이다.







빼어난 경치 덕분에 선녀들이 놀고갔다는 소문을 들은 옥황상제의 딸 옥녀씨는 아빠를 조르고 졸라 이곳에 내려왔다. 뛰어난 경치에 반해 미처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는데, 노한 옥황상제는 문을 닫아버렸고, 결국 옥녀는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단다. 그래서 옥녀봉으로 불린다. (이거 무슨 나이트에 놀러가서 집에 안들어온 애비와 딸의 이야기와 거의 흡사한걸? 옥황상제는 딸바보가 아니었나보다.) 


강경 꽃놀이는 옥녀봉이 책임진다. 벚꽃이 아름드리 핀 옥녀봉에 올라섰다. 잔잔한 금강의 물흐름이 평온하게 만들었다. 이내 눈길을 돌려보면 선녀들이 놀고간 자리에는 개신교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선녀와 목사들이 이 아름다운 곳에서 바톤터치를 한 것이다. 옥녀씨는 어디갔을꼬... 







1896년 미국 침례교단에서 선교로 나온 파울링목사는 옥녀봉에 위치한 지병석 집사 자택에서 최초로 예배를 올렸다. 이것은 우리나라 침례교단의 서막이 되었고, 침례교단측에서도 이곳을 최초 성지로 삼고 있다.







일제시절, 조선인 황민화 정책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미국의 지원을 주로 받던 개신교회들은 민족주의자들과 연대해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개신교도중에 독립투사들이 많았기에 민족적 자긍심이 있었고, 기독교 특성상 예수 외 우상숭배가 금지된다는 종교적 신념. 그리고 기독교를 지원했던 미국은 당시 일본과 강경한 대립각을 세웠던 정치적인 이유가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결국 침례교는 신사참배 거부로 해체되게 되었는데, 이때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옥녀봉에 기념비를 세워두었다.







경강침례교 뿐만 아니라 강경성결교회도 신사참배 거부에 동참해서 한국 최초로 신사참배거부선도기념비를 건립했다.







이 지역 출신 작가인 박범신은 자신의 고향을 주무대로 소설 소금을 집필했는데, 옥녀봉이 그 무대다. 소설속 집이 옥녀봉에 현존하고 있으나, 청소 외에는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처음에는 폐가인 줄 알았다. 박범신 작가는 소금이라는 소설보다 은교라는 영화가 나에게 좀 더 친숙하다. 므흣~~~ 







옥녀봉에서 다시 마을 중심으로 내려오다보니 작은 사찰이 있었다. 교회로 가득한 이 마을에서 사찰을 보니까 반가운 마음이 들어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강경시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교회는 강경천주교회였다. 건축에 조예가 깊었던 보드뱅신부가 직접 설계했다고 한다. 이즘되면 강경은 신교와 구교가 공존하는 교회건축의 야외박물관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성 김대건 신부는 1845년 목선을 타고 처음으로 강경포구에 도착해서 이곳에 위치한 구순오의 집에서 2주간 머물며 미사를 봉헌했는데, 현재 그 터(성 김대건 신부 유숙지)만 남아있다. 이후 김대건 신부는 강경 인근 나바위성당에서 천주교의 첫 발판을 마련했다. (나바위성당은 익산이 주소지지만 실제로 강경에서 더 가깝다. 이곳도 참 아름답더라.)







강경은 거액을 들여 도시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중이다. 그중 근대역사거리 조성사업은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이다. 근대 전성기시절의 강경을 재현중이다. 현재 사업진행중이라 빈 건물만 존재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국내에서 몇 안되는 한국 근대거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연수당한약방(동일당한약국)한옥과 일본 민가 양식이 복합되어 눈길을 끌었다. 주변으로 한약방들이 많은 걸로 추론할 때 강경의 전성기 시절에는 부유한 상인들이 많은 큰 시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중앙초등학교 강당은 1937년 건축된 강경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다. 초등학교 부설이라 그런지 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고, 실제로 보니 은근 매력있다. 이 건물을 보려면 초등학교로 진입해야 하는 부담감이 살짝 있다. (아이들아 수업중에 아저씨가 들어와서 미안해~)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설립이후 길 건너편으로 강경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강경공립상업학교가 설립되었다. 현재는 강경상고이며, 캠퍼스내 옛 관사 (구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관사)가 남아있다. 당시 관사주변으로 정원이 있었을 법했는데, 현재 주변은 방치된 상태다. 관리가 매우 잘된 중앙초 강당에 비하면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나지만, 오랜 시간을 버티며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 여행키워드 | 기차여행, 마을산책, 성지순례, 근대역사여행


 홈페이지 | 논산시 문화관광 http://tour.nonsan.go.kr/


▣ 교통 | 강경역에 무궁화호, 새마을호가 1시간 간격으로 정차


▣ 지도

강경은 거리가 미로같고, 표지판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지도와 핸드폰 네비의 힘이 절실하다. 대부분 볼거리들이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있어 유심히 찾아다녀야 한다. 방향은 주요 성당을 기점으로 잡으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반나절정도 시간이 허락된다면 근대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1코스+ 4코스를 추천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금강을 마주할 수 있는 3코스를 곁들이면 된다. 


▣ 여행팁

- 젓갈때문에 젓갈 관련 식당과 한식당은 많지만, 의외로 이쁜 카페나 레스토랑은 본 적이 없다.

- 숙박 등 관광관련 인프라가 아직은 부족하지만, 조선말기부터 근대까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도보여행으로 괜찮다. 그리고 생각보다 볼거리도 다양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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